본서는 30년간 조직신학을 탐구한 학자의 글이기 전에, 예수의 제자로서 ‘기독교의 본질’에 대하여 물어왔던 한 그리스도인의 오디세이아다. 기독교의 영성이란 무엇인가? 기독교의 선교란? 기독교의 윤리는? 기독교 신학이란 무엇인가? 자유, 권력, 폭력, 종교다원주의, 전통문화, 다원사회, 뉴노멀, 언택트 시대, 등의 문제를 ‘예수와 대화’의 아젠다로 삼는다. 그리고 야곱 뉴스너와 같은 유대교 사상가들을 만나고, 니체, 투르니에, 지라르와 같은 서구 사상가들과 대화한다. 특별히 다석 류영모와 함석헌과 더불어 폴 틸리히의 사상을 한 자리에서 만나게 함으로써 창조적 융합을 지향하는 21세기 신학의 향방을 보게 한다.
추천사 / 1
인사말 / 19
자전(自傳)적 나의 이야기 / 21
제1부
예수와 영성
제 1 장 예수와 이스라엘 영성 38
제 2 장 희망의 예루살렘, 예루살렘의 희망 56
제 3 장 예수와 유대교의 하가다 70
제 4 장 예수와 다석의 종교 대화론 90
제 5 장 예수와 다석의 생태학적 영성: 몸과 얼 124
제 6 장 예수와 함석헌의 성서적
저자의 신학은 네 잎 클로버 같은 창조적 융합의 신학이다. 네 잎은 영성·선교·윤
리·이론 신학이다. 독자들은 서양의 웨슬리·슈바이처·틸리히가 동양의 이용도· 함
석헌·류영모와 어떻게 다르고 통하는지, 동서 문화신학과 영성신학의 ‘화이부동
(和而不同)’과 회통(會通)을 맛보고 기쁨과 생기를 얻게 될 것이다.
한신대학교 명예교수_ 김경재 박사
예수와 대화를 이어가면서 존재·생명·영혼의 초월적 깊이를 드러내는 최인식 교수
의 글은 품격과 깊이를 지니고 있다. 최 교수의 글을 읽는 이들이 나처럼 그의 글
에서 품격과 깊이를 느끼고 예수와 하나님의 초월적 깊이를 함께 맛보면 좋겠다.
씨알사상연구소장_ 박재순 박사팬
이 책은 작은 규모로 묶었다면 4권의 책이 될 수도 있었겠다. 그만큼 각 장에 속한
글들의 주제가 선명하고 논리가 명확하며 서술에 짜임새가 돋보인다. 이는 평생
조직신학자로 살았던 저자의 학문적 깊이와 넓이를 가늠할 수 있는 멋진 책이라
확신한다.
현장아카데미 소장_ 이정배 박사
최인식 교수의 신앙과 신학은 철저히 그리스도적이다. 그러나 그는 거침없이 이웃
종교와의 대화까지 시도하면서 범인류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예수와의 대화의 길
을 탐구한다. 그야말로 그의 신학은 통합적이면서 독창적이고, 복음적이면서 창의
적이고, 전통적이면서 현대적이고, 신학적이면서 실천적이다.
한섬공동체 대표_ 김석년 박사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셔야 한다면, 이스라엘도 그 십자가와 동일한 선상에서의 무고한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자신이 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푸른 나무를 제거하려는 이스라엘이 미래에 당하게 될 무서운 형벌들을 내다보니 그것이 견디기 힘든 아픔이었던 것이다.-p. 64
다석의 몸신학은 생명신학이기 전에 죽음의 신학이다. 생명은 죽음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죽음은 몸을 나라고 생각하는 ‘몸나’의 자기 부정이다. 통념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바대로 ‘몸’ 자체의 부정이 아니다!
몸은 ‘껍데기’요, ‘수레’요, ‘비눗방울’이요, ‘곰팡이’요, 또한 ‘그림자’다. 이런 몸의 은유들은 몸의 유한성과 상대성을 말하고자 함이지, 몸 자체의 고유한 가치를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몸은 한아님의 뜻을 드러내야 하는 ‘상징’으로서 몸마다의 고유한 역할을 다해야 할 사명이 있다. 문제는 곧 멸하게 되고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몸의 실재를 참나로 여김으로써 참생명의 얼나를 따르지 않고 사는 것이다.-p. 142
니체에게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란 ‘살아있는 것(das lebendige)’이다. 그렇다면 과연 존재를 살아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니체는 그 무엇을 ‘살아있는 힘(lebendige Kraft)’으로 보고, 이를 마크트(Macht)라 부른다. 그의 철학적 관심 전반에는 언제나 마크트로서의 힘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이로부터 인간 이해의 단초를 찾아내고자 한다. -p. 451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언약들보다 앞서 있고 그것들보다 크며, 모든 종교들보다 앞서 있고 그것들보다 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어느 종교든지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보다 앞설 수 없고, 스스로 그보다 더 크다고 주장할 수 없다. 그는 “하나님의 모노게네스”이기 때문에 이 지상에서 그와 존재론적으로 비교될 만한 자가 실존한 바 없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언약 안에 있는 자들을 대표하는 ‘유대인’과 언약 밖에 있는 자들을 대표하는 ‘로마인’ 모두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라의 후손과 하갈의 후손 모두에 의해 고통 가운데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당하셨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사라와 하갈 사이의 미움을 멈추게 하고 “미움의 벽”을 허물어뜨릴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p. 554
틸리히는 자신의 조직신학 자체의 구도를 소위 “비정통적인” 방식으로 전개하고 있다고 스스로 밝힌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성령론 안에서 교회론을, 그리고 교회론 안에서 구원론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성령・교회・구원은 불가분리의 주제들이며, 이러한 맥락에서 교회의 본질적 성격도 규정되고 있다. 즉, 교회는 성령에 의한 영적 공동체이며, 그 안에서 중생·칭의·성화를 경험하는 구원 공동체이며, 바로 이러한 특징이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주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대표라는 것이다.-p. 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