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서는 『증언하는 설교 제2판』을 수정 증보하여, 『증언 설교 제3판』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본서는 설교에 있어서 필요한 두 가지인 내용과 형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겨냥하여 능숙하게 설명해준 책이다. 즉 성경적이면서도 복음적인 내용을 21세기라는 현대사회에 어떻게 맛을 내서 청중들의 입맛에 잘 맞도록 할 수 있는지를 잘 소개하고 있다.
목차
추천사
이 성 민 박사_감리교신학대학교 설교학 교수
권 호 박사_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설교학 교수
김 대 혁 박사_총신대학교 설교학 교수
임 도 균 박사_ 침례신학대학교 설교학 교수
저자 서문
역자 서문
서론
제1장 설교란 무엇인가?
제2장 성경적 설교
제3장 설교를 위한 본문 석의
제4장 설교의 초점과 기능
제5장 설교의 기본 형식
제6장 형식 다듬기
제7장 설교의 시작과 연결 및 끝맺음
제8장 설교에 있어서 이미지와 경험
제9장 설교와 표절
제10장 책상에서 강단으로
제11장 순례자의 여정에서 나누는 대화
『증언 설교』(The Witness of Preaching)(제3판)는 교회의 전통을 통해 계승되어 온 “성경적 설교”를 설교의 본래 모델로 강조한다. 더 나아가 성경적 설교를 선언적인 차원에서 주장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성경적 설교의 구체적이고 세밀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 성 민 박사_감리교신학대학교 설교학 교수
그의 방법론은 본문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내용과 형식까지 본문에서 찾으려는 시도를 보인다. 특별히 설교자를 단순히 커뮤티케이터로 보지 않고 진리의 증언자로 제시한 것은 그의 설교 철학이 얼마나 건강하면서도 깊은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권 호 박사_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설교학 교수
이 책은 통합과 균형을 이루어 ‘제3의 길’을 설득력 있게 찾아가는 소위 ‘중용’의 책이다. ‘말씀-선포’가 이루어지도록 설교‘내용’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는 전통적 설교학의 장점과 ‘말씀-사건’이 되기 위해 설교 ‘형식’에 관심을 둔 새로운 설교학의 장점을 솔기 없이 엮어 한 책에 담아놓았다.
김 대 혁 박사_총신대학교 설교학 교수
『증언 설교』(The Witness of Preaching)(제3판)가 한국에 다시 번역 소개되었다! 오랫동안 사랑받는 설교학의 고전(classic)이 되어감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폭넓은 설교를 꿈꾸는 설교자들에게 유익한 도움이 되길 소망하며 본 도서를 추천한다.
임 도 균 박사_침례신학대학교 설교학 교수
기독교 공동체의 삶에 있어서 설교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아는 목회자나 회중 가운데 명확하고 감동적인 진리의 말씀에 갈급한 자가 많다는 사실을 아는 목회자는(때로는 이러한 갈급함을 잘 모른다고 할지라도) 설교가 얼마나 진지하고 중요한 사역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목회의 여러 가지 사역이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버거움도 동시에 느끼고 있다. 용기나 통찰력은 제쳐두고라도 그것을 감당할 능력과 시간이 부족한 것이다. p. 36.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석의란 성경을 듣고 이해하기 위한 체계적인 계획이다.1 훌륭한 주석 계획은 성구 사전이나 성경 사전과 같은 도구와 역사 및 문학적 분석과 같은 방법을 포함하지만, 성경 본문의 의미를 분별하는 일은 얼마나 정확한 분석이냐의 문제라기보다 얼마나 신실하게 귀를 기울이느냐의 문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범죄 현장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아니라 또 하나의 인격을 알아 가는 과정이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지만 성경 본문을 깨닫는다는 것은 시간과 인내를 요하는 일이며 다른 사람(비록 낯설거나 마음에 들지 않을지라도)에 관한 관심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p. 136.
로우리의 주장에 따르면 “오늘 저는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라는 말로 설교를 시작하는 설교자처럼 둔감한 사람도 없다. 이와 같은 서두는 아무런 긴장감도 조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의 문제는 몇 번이나 사랑의 손길을 내밀었음에도 돌아온 것은 깨지고 멍든 상처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이처럼 반대를 무릅쓰는 것입니다”라는 말로 시작했다면 더 나았을 것이다. 이러한 서두가 더 나은 것은 일종의 불균형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 수준에 사랑에 관한 경험적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갈등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p. 244.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또 하나의 교훈이 있다. 그것은 만일 자신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사람들은 전적으로 파괴적인 메시지는 결코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며 들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복음이 때때로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요구하는 것도 우리를 멸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명을 주기 위해서다. 심판의 낫을 휘두르며 설교를 시작하는 설교자는 결국 청중이 재빨리 그 길을 벗어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만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느 교회 여 성도는 담임목사가 “나는 오늘 아침에 누군가를 꾸짖으려(화나게 하려) 합니다”라는 말로 설교를 시작하였다고 했다. p. 339.
설교의 결론을 어떻게 맺을 것이냐는 문제에 있어서 핵심 요소는 설교의 목적이 무엇이냐, 즉 설교의 초점 진술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설교는 청중이 선포된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확실히, 그리고 기꺼이, 설교자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것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설교가 목적이 없어도 된다거나 목적이 모호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설교자로서 우리는 모든 설교가 무엇인가를 성취하기를 원하는데 이와 같은 바람은 모두 초점 진술에 잘 제시되어 있다. p. 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