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한 하나님은 자신이 들지 못하는 바위를 만들 수 있을까?”, “악과 고통 뒤에 은닉하는 전능자 하나님은 왜 신이 되셨나?”와 같은 통속적인 물음들 앞에서 저자는 “사랑하고 사랑받기 프로젝트”를 고안하여, 신정론이라는 다소 무거울 수밖에 없는 신학적인 주제를 대화체의 형식으로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써 내려가고 있다.
추천의 글 1 | 이승구 박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추천의 글 2 | 민영진 박사 (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 역임)
추천의 글 3 | 송태근 목사 (삼일교회 담임)
저자 서문 | 황의찬 목사 (전주온고을교회 담임)
제1부
전능자가 들 수 없는 바위
1. 붕어빵 포장마차 17
2. 용서 22
3. 관계 29
4. 아이 낳는 능력 38
5. 자식의 의미 52
6. 전지전능, 전능자 64
7. 전능자가 들 수 없는 바위 76
8. 배고픈 잡상인 단속자 84
9. 애완견 91
제2부
전능자는 왜 신이 되었나?
10. 사랑하고 사랑받기 97
11. 사랑은 전능자의 발명품 105
12. 사랑에 꽂힌 전능자 114
13. 전능자의 사랑 파트너 120
14. 전능자는 왜 신이 되었을까? 129
15. 전능자는 유일무이한 신일까? 138
16. 존재하는 것의 근원 146
제3부
전능자를 사랑한 자,
사랑하지 않은 자
17. 악과 고통 그리고 전능자 155
18. 악과 고통 그리고 사랑 163
19. 부부간의 진짜 사랑 173
20. 사랑과 사랑 아닌 것 179
21. 전능자가 하는 일 188
22. 악한 자의 형통, 착한 자의 고난 197
23. 전능자의 자기 분립 205
24. 전능자를 사랑한 자, 사랑하지 않은 자 212
제4부
우리도 우리의 모양대로
25.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 224
26. 사랑의 정의 232
27. 우리도 우리의 모양대로 238
에필로그 242
황의찬과 『붕어빵』 한 걸음 더 들어가기 243
정승태 박사 (침례신학대학교 종교철학 교수, 목회신학대학원장)
이승구 박사_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이 책은 참으로 귀한 변증서이다. 이 시대에 신학을 하는 분들이 반드시 말해야 하는 신정론의 주제를 잘 다루어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를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
민영진 박사_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 전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
붕어빵 포장마차 안에서 전개되는 전능자 담론으로써 저자가 밝혀내는 용서, 관계, 출산, 자식의 의미 등 일련의 주제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도 똑같이 중요한 관심사임을 이 책에서 다시 확인하는 기쁨을 누렸다.
송태근 목사_삼일교회 담임
묵직한 주제지만 저자의 배려 깊은 글쓰기는 신정론의 논점을 놓치지 않도록 한다. 저자의 고민, 더 나아가 인간의 태생적 질문에 이 책이 이해의 폭을 넓혀 주기를 기대한다. 특별히 이 땅의 고통당하는 분들에게 이 책이 말하려는 위로가 오롯이 전달되길 바란다.
정승태 박사_침례신학대학교 종교철학 교수 / 목회신학대학원장
악과 고통의 문제로 씨름하는 분들과 신앙의 성숙을 필요로 하는 분들을 위해 이보다 더 없이 유익한 책은 찾아보기가 어려울 것 같다. 특히 저자의 앞선 저서 『침묵하지 않는 하나님』과 함께 이 책을 읽는다면 더 없는 신앙적 향유를 경험할 것으로 보인다.
“부모가 아이를 낳는 일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해요, 아이는 태어나 자라면서 무수한 잘못을 부모에게 할 겁니다. 그럴 가능성에 대하여 자녀를 갖기 이전에 이미 용서하고 출산을 결정한다고 보는 것에 무리가 있습 니까?”
“듣고 보니, 맞는 얘기입니다. 자녀가 미래에 저지를 온갖 잘못을 부모는 다 감안하고 용서하고 나서야 출산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결정의 이면에는 바로 이 용서의 문제가 있다. 미래의 자녀에 대하여 용서가 되면 아이를 갖게 될 것이고, 그런 저런 문제들에 대하여 용납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면 즉, 미리 용서가 안 되면 ‘아이를 갖지 말자!’ 이렇게 된다. 어린 아이를 좋아한다 혹은 싫어한다는 취향의 문제는 곧 용서의 문제이다. 어린 아이를 좋아한다는 말은 어린 아이의 재롱은 물론 말썽에 대해서도 관용 베풀기를 즐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p. 26
만일 전능자가 있고, 그 전능자가 자기 존재를 사람들에게 개념으로 드러내고자 했다면 그것이 ‘유비’라는 뜻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전능자 개념을 경험하도록 영유아기 때 자기 부모를 인식하는 형식에서 전능자는 전능의 개념을 ‘유비’로서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이때의 전능은 영유아기 자녀의 인식에서뿐 아니라 실제 부모의 역할에서도 전능을 대행한다. 요람의 아이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부모는 ‘전능자’로서 제공한다. -p. 79
전능자는 자기와의 사랑 파트너로 사람을 지으면서 일단 사람들의 눈으로부터는 숨어있어야 할 필요를 알았다. 전능자가 모든 사람들의 오감과 이성으로 인식되는 모습으로 자기를 드러내면 모든 사람들이 대번 에 전능자를 알아보고, 전능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복종이나 맹종은 있겠지만 사랑은 없다. 사랑 아이템은 의미가 없어진다.
‘저기 전능자가 있다. 그가 조물주이다! 그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알며, 인간의 수명은 물론 삶의 양상까지 좌지우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전능자가 지금 여기에 와 있다. 그러니 모두 모여 그에게 잘 보이도록 하자!’ -p. 136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난을 가까이에서 본 적 있어요?”
“글쎄요, 아직은 젊어서 그런지, 절실하게 느껴본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엊그제 TV를 보면서 아내와 대화할 때,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바로 그런 사례가 아닐까, 또 유전 무죄, 무전유죄라든가, 이런 사회적 불균형의 문제를 거론했었습니다!” -p. 198
결혼생활을 감당하기에 버겁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 말은 정직한 말이라고 할 수 없다. 자녀 낳아 키우는 일이 힘겹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이 두 가지 일이 대표적으로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일’ 즉, ‘내가 들어 올릴 수 없는 바위’이다.
“교수님! 그렇다면 오늘의 결론은 ‘사람은 전능자의 붕어빵이다!’ 맞습니까?”
“오~ 자기도 역시! 붕어빵에 대해서는 자기가 사장이니까! 자기 최고!” -p. 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