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년 기독교 역사 Ⅱ
A History of Christianity
이 시대에 세계적으로 “교회사의 대가”, “최고의 역사가”라는 칭송을 이미 받고 있는 디아메이드 맥클로흐는 3천 년간의 기독교 역사 서술을 한 권의 책에 담아 그의 명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그는 3천 년간의 방대한 기독교 역사를, 그것도 혼자서, “기독교사에 대한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새로운 관점에서 학문적으로도 탁월하게 서술하였다. 또한 그는 이 내용을 영국 BBC 다큐멘터리로 직접 소개하여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디아메이드 맥클로흐는 A History of Christianity에서 기독교 역사를 주전 1000년 경 고대 그리스․ 로마, 그리고 고대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부터 시작해 현시대의 세계 기독교까지 광범위하게 살펴보고 있다. 그는 여기서 교회사가로서 기독교 역사를 고찰하면서도 서술에 있어서 기독교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면서 객관적으로, 그리고 세계 전역의 역사 연구를 종합하려는 시도를 한다. 이것은 그에게 있어 현재 기독교의 모습과 발전과정에 대해 의문과 오해를 품고 있는 더 확장된 독자들을 위한 배려에서 취한 한 가지 해석과 연구 방법이다. 또한 그는 기독교 신앙이 광신적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기독교 역사에 등장하는 “양 극단의 이야기를 모두” 말하고자 한다. 그는 과도하게 단순화된 역사가 광신주의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 복잡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다룬다. 한편, 그는 역사가로서 종교의 진리를 판단할 능력이 없다고 겸손하게 고백하면서 독자들의 분별력을 위해 이 복잡한 이야기를 가능한 분명하게 제시하고자 애썼다.
본서는 디아메이드 맥클로흐의 한 권의 대작, A History of Christianity를 세 권으로 나누어 번역한 것 가운데 두 번째 책으로 중세와 종교개혁 시대를 다루었다. 본서는 『종교개혁의 역사』(The Reformation: A History, CLC 역간, 2011)에서 다룬 이야기를 좀더 발전시켜 보다 포괄적으로 다루었다.
[특징]
1. 본서의 “역자 서문” 중에서
- 기독교의 역사를 예수의 역사적 출현 이전으로 확장시킨다. 저자는 기독교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결정적 영향하에 탄생했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 영국인의 눈으로 교회 역사를 관찰한 것으로서 종전의 미국적 시각과 상당히 다른 내용과 해석을 제공하고 있다.
- 교리적 문제들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되, 교회의 교리와 관행이 초래한 역사적 현실들에 대해선 자신만의 관점에서 냉철한 비판과 평가를 시도한다.
- 기존의 교회사 책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동방교회의 역사를 방대하게 서술한 것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역사를 세심하고 광범위하게 정리하고 있다.
2. 68개의 칼라화보 수록
3. 방대한 참고 문헌과 주제 색인
[추천 독자] - 본서의 “서론” 중에서
- 교회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
- 교회사에 관심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
- 기독교와 그 역사에 대해 관심있거나 비판하는 일반 독자
추천사·5 저자 서문·9 역자 서문·12
약어표·19 지도 목록·26 그림 목록·27
서론·35
제11장 서방: 우주적 황제 혹은 우주적 교황?(900-1200)·55
1. 수도원장, 전사 그리고 교황: 클뤼니의 유산 · 55
2. 그리스도의 목사: 결혼, 독신, 그리고 우주적 군주 · 66
3. 십자군 시대(1060-1200) · 80
4. 시토 수도회, 카르투지오 수도회, 그리고 마리아(1100-1200) · 92
제12장 만인을 위한 교회?(1100-1300)·101
1. 신학, 이단, 대학들(1100-1300) · 101
2. 목회적 혁명, 탁발수사들, 그리고 제4차 라테란공의회
(1200-1260) · 108
3.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과 신앙 · 124
4. 냉기 속의 사랑: 1200년 이후의 개인적 경건 · 129
제5부 정교회: 제국의 신앙(451-1800)
제13장 새 로마에서 신앙(451-900)·143
1. 정교회를 형성한 교회: 하기아 소피아 · 143
2. 비잔틴 영성: 막시무스와 신비주의 전통 · 157
3. 성상을 파괴하라: 성상파괴논쟁(726-843) · 165
4. 포티오스와 서방을 향한 새로운 선교(850-900) · 188
제14장 정교회: 하나의 제국 그 이상(900-1700)·201
1. 위기와 십자군(900-1200) · 201
2. 제4차 십자군원정과 그 이후(1204-1300) · 212
3. 정교회 르네상스, 오토만과 헤시카즘의 승리(1300-1400) · 224
4. 무너진 희망: 교회 연합, 오스만 정복(1400-1700) · 236
제15장 러시아: 제3의 로마(900-1800)·253
1. 기독교 세계에 대한 새로운 위협: 노르만족, 러시아, 키예프
(900-1240) · 253
2. 타타르, 리투아니아, 그리고 모스크바 대공국(1240-1448) · 264
3. 모스크바의 승리(1448-1547) · 280
4. 폭군 이반과 새로운 총대주교좌(1547-98) · 290
5. 모스크바 공국에서 러시아로(1598-1800) · 301
제6부 분열된 서방 기독교(1300-1800)
제16장 참된 기독교에 대한 관점들(1300-1517)·319
1. 교회, 죽음 그리고 연옥(1300-1500) · 319
2. 도전 받은 교황 군주제(1300-1500) · 329
3. 유명론자, 롤라드파, 그리고 후스파(1300-1500) · 338
4. 옛 세계가 새 것을 가져온다: 인문주의(1300-1500) · 352
5. 종말에 교회 개혁하기(1500) · 366
6. 에라스무스: 새로운 시작? · 380
제17장 분열된 집(1517-1660)·395
1. 비텐베르크의 한 대문 · 395
2. 농민전쟁과 츠빙글리 · 412
3. 급진적 종교개혁과 정부주도형 종교개혁: 아나뱁티스트와 헨리 8세 · 421
4. 스트라스부르, 잉글랜드, 그리고 제네바(1540-60) · 433
5. 개혁주의 개신교인들, 신앙의 정치화(Confessionalization), 그리고 관용(1560-1660) · 446
6. 종교개혁의 위기: 30년 전쟁과 브리튼 · 456
제18장 로마의 갱신(1500-1700)·471
1.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역류들: 발데스파와 예수회(1500-1540) · 471
2. 레겐스부르크와 트리엔트, 갈등이 해결되다(1541-59) · 482
3. 트리엔트 이후의 반종교개혁: 잉글랜드, 스페인,
그리고 신비주의자들 · 489
4. 연기된 트리엔트: 프랑스와 폴란드-리투아니아 · 501
5. 삶은 분열되고: 성인, 위엄, 성 그리고 마녀 · 508
제19장 세계적인 믿음(1500-1800)·521
1. 이베리아 제국: 수출된 서방교회 · 521
2. 신세계에서 반종교개혁 · 531
3. 아시아의 반종교개혁: 정복되지 않은 제국들 · 540
4. 아프리카의 반종교개혁: 노예무역의 어두운 그림자 · 549
제20장 개신교 대각성(1600-1800)·561
1. 개신교인들과 미국식민화 · 561
2. 개신교 생존투쟁(1660-1800) · 584
3. 경건주의와 모라비안 · 593
4. 복음주의 부흥: 감리교회 · 607
5. 대각성운동과 미국혁명 · 618
참고 문헌·634
색인·642
맥클로흐는 교회사의 대가답게 일반문화와 기독교와의 관계를 구명하고, 개별적이고 미미한 사건으로 보였던 것들을 내적으로 연결시키며 보다 뚜렷한 형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본서는 한국 개신교인들의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하리라 믿는다.
-이성덕 박사/ 배재대학교 역사신학 교수
본서는 탁월한 학문적 성취를 보여준다. 범위에서 놀라우며 읽을 수밖에 없고, 최고 전문가들을 위한 통찰과 일반 독자들을 위한 설명이 가득하다. 영어로 쓰인 교회사책 중 본서에 필적할만한 것은 없을 것이다.
-로완 윌리암스(Rowan Williams, 영국 캔터베리 대주교), Guardian
본서는 방대하고 전율적인 일급 역사서이다. 저자 맥클로흐는 독자들로 하여금 위트와 탁월한 예화들에 계속 빠져들게 한다.
-존 콘웰(John Cornwell), Financial Times
본서는 권위 있는 관점에서 서술된 기독교사에 대한 전혀 다른 이야기이며 본서의 탁월함은 세계적 측면에 관심을 집중하는 데 있다. 무엇보다 이것은 인간적인 이야기다.
-피터 스탠포드(Peter Stanford), Sunday Times
맥클로흐는 우리에게 명료하고 공감적인 설명의 모델을 제공한다. 그 작업은 규모에 있어서 방대하며 범위가 광대한데도 대단히 공정한 마음으로 수행되었다. 정말 멋진 책이다.
-이몬 더피(Eamon Duffy), Sunday Telegraph
한 사람이 기독교사를 쓸 수 있을까? 맥클로흐 교수는 한 사람의 작가가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놀랍게 보여주었다. 본서는 정말로 끝까지 읽고 배우며 숙고할만한 한 편의 서사시다.
-니콜라스 오르메(Nicholas Orme), Church Times
교구가 조직되면서 세속의 지주들뿐만 아니라 성직자들에게 새로운 부의 원천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그 나라 전체를 뒤덮은 교구제도는 교회에게 유럽의 새로운 농업자원들에게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농부이자 교구민인 사람들에게 농업생산물의 성경적 1/10, 즉 십일조를 요구했던 것이다. 십일조는 옛 귀족적 엘리트보다 평신도들이 훨씬 더 많이 냈으며, 교회의 목회적 관심을 훨씬 더 널리 확대할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 이것은 최소한 죄에 대한 교회의 태도 면에서 많은 결과를 가져왔다. 고대 세계에서는 교회가 노예제도에 도전했었으나, 이제는 인구의 상당한 부분을 농노로 삼는 운동을 악하다고 정죄하지 않았다. 심지어 클뤼니 같은 거대한 수도원들도 소작인들을 농노로 삼는 데 앞장섰기 때문에 그것은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성직자들은 부가 초래한 죄의 가능성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으며, 자신의 신도들을 그런 결과로부터 보호하려 했다. 인간적 죄악들 중 가장 기초적인 교만과 함께, 탐욕과 고리대금이 성직자 도덕교육의 주요 주제들이 된 것은 12세기 동안이었다.6 죄가 증가하면서 죄를 치유하는 방법도 늘었다. 중세 사회의 위대한 역사가 리차드 서든(Sir Richard Southern) 경은 교구 내에서 성직자의 목회적 돌봄이 확대된 것이 구원과 내세에 관한 서방교회의 신학 내에 심오한 변화를 유도했다고 해석했다. - 63-4쪽
네스토리우스 논쟁이 벌어졌던 시대 이후, 서방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임신자’(God-bearer, theotokos)에 대한 동방의 신앙 너머로 중요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들이 이 논란 많은 단어를 번역할 때 일반적으로 이 단어를 흔히 “하나님의 어머니”를 뜻하는 라틴어 단어로 바꾸었다(이것은 그리스인들을 성가시게 했던 서방의 또 다른 문제였다). 임신자보다는 어머니가 훨씬 더 강한 이미지를 갖고, 또 그 용어는 산부인과적 문제에 집착하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4세기 로마에서 벌어진 소동에서 히에로니무스는 마리아의 영원한 처녀성을 주장했다.55 그런 사상들은 다양한 환경들이 결합해서 마리아숭배를 부추기고 풍요롭게 한 11세기에 꽃을 피웠다. 그레고리우스 개혁가들에게 동정녀 마리아는 ‘성직자의 보편적 독신’이라는 새로운 사상을 뒷받침해준 순결의 완벽한 모범이었다. 그리고 이 주제는 특히 수사들에게 호소력이 있었다. 얼마 후 카타리파의 위협이 강해지면서 마리아는 카타리파의 이원론에 반대해서 하나님이 성령을 거룩하게 하신 것만큼 창조되고 육체를 가진 존재들도 거룩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보증하는 것처럼 보였다. 말씀이 육신이 된 것은 바로 마리아 안에서였기 때문이다. 이런 사상에는 문제가 있었다. 카타리파들도 마리아가 인간적 어머니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며 마리아숭배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다. 아무튼 성경에는 그녀의 족보가 없지 않은가? -97-8쪽
『신학대전』은 하나님의 존재와 본질에 대한 가장 추상적인 질문들을 다룬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일상생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목적의 일부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같은 매우 실천적인 문제들도 논의한다. 결론을 향해 달려가는 질문과 분류를 통해, 이 책은 하나님의 지상과 천상의 창조에 대해 균형잡힌 견해를 보여준다. 이런 구조 속에서 그레고리우스 7세의 후계자들은 자신들을 하나님 체계의 지상적 절정으로 간주할 수 있었다. 『신학대전』 서두에서 그는 오래 전에 아레오파고스의 디오니시우스가 내린 결론, 그리고 비잔티움 신학자들 사이에서 훨씬 더 익숙했던 결론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언급하기 위해 어떤 단어도 사용할 수 없을 것 같다.”28 이런 주장은 표준영어판의 경우 분량이 61권이나 되고, 1274년에 아퀴나스가 사망할 당시에 여전히 미완성이었던 저작에 있어서 매우 낯설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콜라 신학자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이 사람이 깨달은 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든 언어는 곁눈질, 비유, 은유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퀴나스의 진리판단은 개연성에 대한, 주장들의 균형에 대한 요약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확실성을 위해 그의 위대한 저작을 찾는 사람들이 가끔씩 이 부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126쪽
부적격한 성직자들에게 불만이 많았고 외국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는 종교적 혁신에 혐오감을 느낀 평신도들은 당시의 반체제 그룹인 구교도들(Old Believers) 안에서 대안을 발견했다. 실제로 구교도들의 수는 18세기 동안 급증했다. 그들은 지배자들이 철폐했던 보다 오래된 예배 및 경건생활 전통을 보존했다. 그들이 새로운 것을 거부했던 것은 그들의 관점에서 비-러시아적인 모든 것을 거부한 것이다. 일부 구교도들은 차르가 새로운 음식으로 추천한 감자도 먹기를 거부했다. 왜냐하면 감자는 믿음 없는 서방에서 수입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감자가 처음으로 러시아에 들어왔을 때 러시아 농민들을 그것을 대체로 혐오했다. 물론 감자가 보드카를 만들 때 유용하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에는 사정이 달라졌지만. “차, 커피, 감자, 담배가 일곱 차례의 세계공의회에서 정죄 받았다”는 것이 구교도들의 구호 중 하나였다. 그리고 다른 때에는 식사용 포크, 전화기, 철도도 동일한 저주를 받았다. - 313쪽
루터는 일반적인 인문주의자들과 달랐다.3 그의 신학에는 인문학의 핵심적 특징인 낙관주의와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인식 같은 것이 전혀 발달되지 않았다. 대신 그가 바울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해석을 떠올리게 한 구원신학을 저술할 때 인문주의적 학문방법이 그에게 영향을 미처 스콜라주의에 계속 도전하게 되었다. 점점 더 공개적으로 그는 토마스주의와 유명론 같은 스콜라전통을 경멸했다. 그는 스콜라 신학의 토론 속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존재하는 것을 혐오했고, 가브리엘 비엘(Gabriel Biel)이 개척했던 하나님과 인간 간의 구원계약이라는 유명론 사상을 경멸한 것이다. 1513년에 그가 시편 강의를 시작했을 때 그것은 시편을 중심으로 일상생활을 구성했던 수사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그는 학생들을 위해 한 묶음의 시편을 인쇄하여 나누어 주었다. 그 인쇄물에는 본문 주위에 여백을 많이 남겨 두어 그의 강의를 학생들이 받아 적게 했다. 학생들의 성경해석 렌즈로 기능했던 중세의 모든 주석을 전혀 제공하지 않고 학생들이 본문 자체를 신선한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유도했다. - 39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