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세기 무렵, 초기에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유대의 한 종파의 사상이 로마 제국을 뒤흔들었
고 지중해 세계를 갈라놓았으며 서유럽과 동유럽의 문화를 형성하였다. 초기의 기독교는 어떤 의미에서는
그 당시의 사상과 신념들의 종합체였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디오클레티안 황제의 혹독
한 박해와 순교자들의 열렬한 신앙, 교리 논쟁의 혹독한 박해와 순교자들의 열렬한 신앙, 교리 논쟁의 쓰
라림과 로마제국 전체로의 기독교의 확장 이면에 있는 폭발적인 힘을 설명해 주지 못한다. 콘스탄틴 황제
의 회심과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칙령 이래, 교회는 로마제국 전체에 걸친 이상적인 통치를 위해서 "기성교
회"로서의 영적인 의무와 책임을 조화시키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세상을 통치할 사람들과 세상을저버
릴 사람들 사이에서의 이러한 긴장속에서 교황제도와 수도원 운동이 성장하게 되었고, 이것이 중세 서양기
독교의 두 기둥이 되었다.